신용회복경험담
한 글로벌 기업 마케팅 매니저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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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한 일상, 예기치 못한 전환 전까지 (약 15%)
저는 올해로 35살, 글로벌 IT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직장에서는 성과도 좋았고, 연봉도 동년배에 비해 높은 편이라 나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도 했고, 귀여운 유치원생 아이도 있었죠.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측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더군요.
2. 전개: 이혼이라는 현실, 무너지기 시작한 재정 (약 25%)
3년 반 전, 아내와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문제와 서로 다른 생활 가치관이 누적되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감정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재정적인 충격이 더 컸습니다.
이혼 정산 과정에서 위자료와 재산 분할로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한 번에 필요했습니다. 급하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모자란 부분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채웠습니다. 처음엔 "몇 년만 허리 졸라매면 갚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생활비 지출과 아이 양육비, 주거비용까지 겹치며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결국 3년 6개월 만에 총 채무액이 7,8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주 채권자는 은행 두 곳과 카드사 한 곳이었고, 이자만으로도 매달 백만 원 넘게 빠져나가니 숨이 턱 막혔습니다.
3. 위기: 더는 버틸 수 없던 순간, 개인회생을 결심하다 (약 20%)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입원비 일부를 제 카드로 결제한 후, 결국 연체가 시작됐죠. 연체가 시작되자마자 채권사에서 연락이 빗발치고, 직장까지 들킬까 불안해 매일 전화기를 끄고 지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대로 가면 정말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회생을 결심하기까지 꼬박 6개월을 고민했습니다. ‘내가 그런 걸 해야 할 정도로 무너졌나?’ 자존심도 상했고, 직장에 알려지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죠. 아내와의 이혼도 지쳤는데, 또 다른 법적 절차를 겪는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개인회생 상담을 받게 됐고, 처음 상담받을 땐 부끄럽고 막막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분이 제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셔서 그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4. 해결: 두 번째 시작, 개인회생 절차의 기록 (약 25%)
상담부터 인가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서류 준비도 쉽진 않았고, 소득 증빙과 지출 내역 정리가 생각보다 번거로웠습니다. 저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변제계획안이 비교적 원활히 승인되었습니다.
법원이 확정한 변제 계획은 총 3년간 매월 58만 원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이자만도 그 이상이었기에 큰 위안이 되었죠. 법원 출석은 한 번 있었는데, 매우 긴장됐지만 정해진 질문에 차분히 답변하니 큰 문제 없이 지나갔습니다.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지출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예산을 철저히 짜고, 불필요한 소비를 없애며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한 달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니 어느새 반년, 1년이 지나가더군요.
5. 결말: 다시 찾은 평온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 (약 15%)
지금은 변제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매달 자동이체로 변제금을 납부하며, 이제는 더 이상 채권사 전화에 떨지 않습니다. 아이와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무엇보다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돈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위기가 왔을 때 도움을 청하는 용기의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남은 변제를 마친 후, 아이 교육자금과 노후 준비를 차근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혼자 끙끙 앓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시길 바랍니다. 개인회생은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시작점입니다. 저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