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24 10:30

아들의 꿈을 위해 달렸지만, 결국 나 자신부터 구해야 했어요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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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평범한 일상 속, 나름 열심히 살았던 삶 (15%)

39살, 저는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싱글맘입니다. 이혼 후 중학생 아들과 단둘이 지내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어요. 월급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꾸준했고, 아들과 소소한 외식을 하거나 주말엔 영화도 보러 가는 그런 소박한 일상이 제겐 큰 위안이었죠.



 

전개: 유학이라는 꿈, 무리한 선택의 시작 (25%)

모든 게 바뀐 건 아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부터였어요. 영어에 흥미가 많고 스스로 유학 정보를 찾아보는 모습에 감동도 받았죠.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에 저축도 꺼내 쓰고, 부족한 부분은 은행 대출과 카드론을 이용했어요. 처음엔 3천만 원 정도였던 빚이, 아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다 보니 4년 만에 8천만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두 개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카드사 두 곳에서 현금서비스를 반복하며 버텼지만,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월급의 절반 이상이 고정 지출로 빠져나가면서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어느새 저는 밥값도 아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위기: 한계에 부딪힌 순간, 개인회생을 결심하다 (20%)

결정적인 계기는 카드 연체가 시작되면서부터였어요. 하루는 병원에서 환자 응대 중 카드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 순간 너무 창피하고 속상해서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날 집에 와서 아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어요. "이게 과연 아이를 위한 길일까?" 그 질문이 제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개인회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인터넷 검색이었고, 솔직히 말해 두려웠습니다. 혹시 회사에 알려질까 봐 걱정했고,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하는 자책도 들었죠. 2~3달 정도 망설이다가 결국 무료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어요. 상담사분이 제 상황을 차근히 들어주시고 ‘잘한 결정’이라 말해주셨을 때, 처음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결: 서서히 풀려간 실타래 같은 시간들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추가 서류를 제출하거나 변제 계획을 조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진행됐습니다. 월 변제금은 약 38만 원으로 책정되었고, 총 36개월(3년) 동안 갚는 조건이었어요.

처음엔 ‘내가 정말 이걸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매달 차곡차곡 변제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삶이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법원에 출석했을 때는 긴장도 많았지만, 판사님이 제 사정을 이해해주려는 태도를 보여주셔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감정적인 부분이었어요. 주변에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제 이야기를 이해해준 친구 한 명이 있었고, 그 친구의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네가 무너지면 아들도 무너져”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죠.



결말: 지금, 그리고 앞으로 (15%)

지금은 변제 1년 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빠듯하긴 하지만, 고정된 지출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안도감을 느껴요. 아들은 국내 학교로 다시 돌아와 적응해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많이 울었어요.

앞으로는 다시 빚을 지는 일이 없도록 계획을 철저히 세우며 살려고 해요. 조금씩 저축도 시작했고, 언젠가는 작은 여행이라도 아들과 함께 다녀오고 싶어요. 지금 제 인생은 '회복 중'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이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개인회생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용기, 지금부터라도 내 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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