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6.24 12:04

실수는 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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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연구에만 집중하던 나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제 인생은 온통 연구와 실험, 논문으로 가득했습니다. 공대 석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학비와 생활비를 조교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해결하며, 소소하지만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언젠가 좋은 기업에 취직해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하리라는 꿈도 있었죠.



 

2. 전개: ‘허세’라는 이름의 빚

그러던 중, 선배들과의 비교와 외부 활동에서의 체면 때문에 시작된 선택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급 수입차 리스. 솔직히 말하면 허세였던 것 같아요. 같은 연구실 선배가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걸 보고, ‘나도 한 번쯤은’이라는 생각으로 덜컥 리스 계약을 했죠.

리스료가 월 70만 원이 넘었고, 유지비, 보험료, 기름값까지 더하면 월 100만 원 이상이 차량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카드로 돌려 막으며 버텼지만, 2년 가까이 이어지자 카드 연체가 시작됐고 결국 리스비까지 밀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쌓인 채무가 5,500만 원. 리스회사와 카드사 두 곳에서 온통 독촉이 쏟아졌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됐습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월수입이란 게 많지도 않거니와 불규칙한 연구지원비에 의존하다 보니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습니다.



 

3. 위기: 현실을 마주했을 때

결정적인 계기는 부모님이 알게 된 일이었습니다. 카드사에서 온 독촉장이 집으로 발송되면서 모든 게 드러났죠. 부모님은 처음엔 많이 실망하셨고, 저도 그날 한참 울었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이 문제를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습니다.

몇 주간 밤을 새며 검색하고, 후기들을 읽다가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건 망한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상담 신청 버튼을 누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고, 상담 받던 날엔 목소리조차 제대로 안 나올 정도로 불안했죠. 하지만 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상담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 숨통을 조금씩 틔워줬습니다.



 

4. 해결: 제2의 시작점

상담을 받고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 인가까지 받는 데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모든 채권자 내역을 정리하고 지출 내역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무계획하게 살았는지도 실감하게 됐죠.

법원은 제 상황을 고려해 월 18만 원씩 3년간 갚는 변제계획을 인가해줬습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동안 감당해온 고금리 카드이자에 비하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할 때는 긴장도 됐지만, 판사님이 제 이야기를 성실히 들어주시고, 제 진정성을 인정해주셔서 오히려 위로가 됐습니다. 이후부터는 매달 날짜 맞춰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1년 가까이 연체 없이 잘 지켜오고 있습니다.

중간에 생활비가 부족한 적도 있었지만, 카풀을 하거나 식비를 줄이고, 중고 거래를 활용해 비용을 절약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버텨냈고, 그게 어느덧 습관이 되었습니다.




 

5. 결말: 회복 중인 삶, 그리고 미래

현재 저는 개인회생 11개월차입니다. 실험실에서도 다시 활기를 찾았고, 불안했던 눈빛 대신 목표 있는 표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차는 반납했고, 지금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습니다. 재정관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졸업 후 취업하면 다시 차를 타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제 수입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선택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인생 전체가 실패한 건 아닙니다.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제도예요. 부끄러워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세요. 분명 다시 일


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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