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01 16:15

래는 36세 대학병원 간호사 워킹맘이 자녀의 해외 유학비 부담으로 인한 채무를 겪고 개인회생을 통해 회복한 경험담입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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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아이들의 미래만 생각했던 나날 (약 15%)

저는 36세,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입니다.
기혼이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매일 정신없이 돌아가는 병동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 웃는 얼굴을 보면 피로도 잊고 살아왔습니다.

남편과 저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큰아이를 조기유학 보내자는 결정을 내렸고,
2년 전부터 영어 캠프와 단기 프로그램을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투자”라고만 생각했죠.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며.



 


2. 전개: 점점 무너져간 가계, 그리고 나 (약 25%)

처음엔 준비한 적금을 깼고, 그다음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유학 준비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고,
항공료, 학비, 체류비, 입학 컨설팅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은행에서 유학자금 명목으로 받은 대출만 4,500만 원,
카드론과 리볼빙까지 포함해 총 8,000만 원가량의 빚이 쌓여 있었습니다.

남편 소득도 적지 않았지만, 매달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다 보니 카드값이 연체되기 시작했고,
신용등급도 6등급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무너졌던 건,
아이를 위해 시작한 선택이 결국 가족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3. 위기: 아이 앞에서 무너진 날 (약 20%)

결정적인 계기는 큰아이가 외국에서 급히 연락해온 날이었습니다.
급한 병원비와 기숙사비 문제로 추가 비용이 필요했지만
당장 카드 결제도 못 하던 제게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엄마, 돈이 없어서 못 오는 거야?”
그 말에 저는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살아왔던가,
누구를 위해 아등바등해왔던가 싶더라고요.

그날 밤, 인터넷으로 ‘빚 갚는 방법’을 찾다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며칠을 고민 끝에 상담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병원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숨기지 말고 도움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게 맞다”는 따뜻한 말을 해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4. 해결: 구체적인 회복의 시작 (약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총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필요한 서류도 많고, 변제 가능 금액 산정을 위한 자료도 꼼꼼히 준비해야 했죠.
저는 **월 32만 원씩 36개월(3년)**간 변제하는 계획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생계비를 뺀 소득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정해졌고,
잔여 채무는 일정 부분 탕감받게 되었습니다.

법원 출석 때는 많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판사님은 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셨고,
“아이를 위한다는 게 빚의 수렁이 되기도 한다”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정말 내 잘못만은 아니었구나,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5. 결말: 숨 쉴 수 있는 삶, 그리고 다시 웃는 아이들 (약 15%)

지금은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동이체로 납부 중입니다.
큰아이 유학은 잠시 중단했지만, 오히려 그 아이도
“다시 준비해서 도전하면 된다”며 성숙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웠습니다.

남편과도 다시 예전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대화도 훨씬 깊어졌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지낼 만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저처럼
“가정을 위해 시작한 선택이 빚으로 이어진 분”이 계시다면
부디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고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당당히 활용하세요.

개인회생은 패배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기회였습니다.
저는 지금 그 기회를 꼭 붙잡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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